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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록실

홍수환선수 - 4전5기의 명승부 [1977.11.27]

by 레트로상회 2012. 9. 10.

 

 

홍수환 선수와 카라스키야  (파나마) 

 

1977년 한국의 늦가을, 11월 27일. 온 국민은 TV에 모여 앉았다. WBA(World Boxing Association, 세계권투협회) 주니어 페더급(새로 신설됨) 초대 챔피언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챔피언 결정전. 상대는 17세 4개월이라는 어린 나이에 11전 11승 11KO를 기록하며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로 불렸던 핵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이에 맞서는 28세의 홍수환 선수에 대해 언론에서는 30%대의 KO율을 문제삼으며 '소총으로 탱크에 맞서는 격' 이라며 비아냥 거렸다.  홍수환, 4번 다운 당하고 5번 일어서다



최연소 세계 챔피언의 탄생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패배를 예상했다. 아니라 다를까 4번의 다운. 그것도 한 라운드(2R)에서만 4번을 쓰러지는 비참한 모습에서 TV앞에 모인 국민들은 경기를 당장 중단하지 않는 복싱 룰이 야속할 뿐이었다. 체념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혼자 다시 일어났다. 온 국민은 쓰러진 채 경기를 포기했지만, 그는 혼자 외롭게 일어섰다. 그리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며 고함치듯 주먹을 뻗었다. 우리 모두 그만 두자고 그대로 쓰러져 있을 대 그는 혼자 일어나 불꽃처럼 타올랐다. 마침내, 두 손을 번쩍 들고 승전보를 알렸다.

하지만, 영원한 챔피언은 없는 법. 그의 인생은 신화처럼 우뚝 솟았던 정상보다도 훨씬 더 깊은 골짜기로 곤두박질쳐졌다. 운동 밖에 몰랐던 그에게 사회는 너무나도 냉혹했다. 전직 세계 챔피언에서 유명가수와의 재혼, 이혼, 이민, 알래스카의 택시 운전사, 마약 딜러 누명, 미국 교도소 수감, 기나긴 무죄 투쟁, 보석금을 갚기 위한 접시 닦기, 무죄 판결, LA의 신발 장사, 귀국 후엔 해결사 누명, 다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그는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고비마다 '4전5기'의 투혼으로 처절하게 극복하며 용감하게 살아 남았다. 그가 극복한 고난의 행로는, 그의 경기를 본 적도 없는 신세대들마저도 열광하는 명 강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기업체에서 가장 선호하는 강사로도 꼽힐 정도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57세)지만 '한국복싱의 부활을 위해 우선 기초부터 다시 세워 저변확대를 해야한다'며 강의 후에는 복싱 체육관으로 찾아가 후배를 지도하고 있다.  한국 복싱계 스타들... (유재두. 김기수. 박종팔. 박찬희. 홍수환. 염동균. 장정구. 김태식. 유명우. 최요삼..) 그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