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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명승부 - 동양의 핵주먹 [박종팔]

by 레트로상회 2012. 9. 25.

 

 

박종팔(朴鍾八, 1958년 8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권투선수로 슈퍼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전라남도 무안군 출신. 1977년 프로로 전향한 후 1979년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미들급 타이틀을 따냈고, 1984년 국제복싱연맹(IBF) 슈퍼미들급에서 머레이 서덜랜드를 KO로 잡고 첫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에도 타이틀을 8차례 방어했으며 1987년 IBF 타이틀을 포기한 뒤 세계복싱협회(WBA)에 새로 생긴 슈퍼미들급에 도전하여 챔피언이 된 후 1988년까지 한 차례 방어에 성공했다. 그의 주력필살기는 가공할 타격의 펀치. 지대루 한방 맞으면 누구라도 바닥에 꽂아버리는 강력한 핵주먹 이었다.

 

 

 

 

명장면 1979년 8월 22일 OPBF 미들급 타이틀 결정전 박종팔 vs 케시어스나이토(일본)

 

1979년 8월 22일 서울 문화체육관 에서 벌어진 OPBF 미들급 타이틀 결정전, 박종팔 VS 캐시어스 나이토(일본)의 시합  입니다.  한국의 중량급의 대부 박종팔 선수의 강력한 훅에 캐시어스 나이토가 그대로 큰 대자로 드러눕고 맙니다.박종팔 선수는 이후 동양에선 상대할 선수가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 IBF.WBA 슈퍼 미들급 챔프까지 등극하였습니다.

 

 

 

 

 

명장면 1987년 1월 25일 IBF 슈퍼미들급 타이틀전 박종팔 vs 덕샘(호주)

 

1987년 1월 25일 서울힐튼호텔에서 붙은 덕샘과 박종팔의 슈퍼미들급 타이틀전. IBF 수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은 87년 1월 25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도전자 덕샘을 맞이해 타이틀 6차방어전을 치렀다. 챔피언 박종팔은 41승(36KO) 3패 1무승부 1노컨테스트를 기록중이고 덕샘은 20전 19승(16KO) 2패를 기록중이다. 두 선수 모두 KO 율은 80%에 이르는 강타자들이라 판정으로 갈 것 같지는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 한편 챔피언 박종팔은 5천만원 도전자 샘은 1만달러의 대전료를 받았다. 1960년 9월 18일, 호주의 퀸즈랜드에서 출생한 덕 샘은 아마추어 호주 대표를 지낸 후 1982년 스물두살의 나이로 프로로 전향한다. 3연속 KO승을 거둔 후 4차전에서 리키 패터슨과의 경기에서 턱이 부서지는 부상으로 2회 TKO패를 당한다. 그러나 이후 14연승(13KO)을 달리는 호조를 보이는 등 중량급의 기대주로 부상한다. 그러나 단 한차례의 타이틀매치는 물론이고 10라운드 이상의 경기도 치른 적이 없는 베일 속의 선수인 점에서 박종팔 측의 대비가 필요하다는게 중론 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15회 말미에 ~~

 

 

 

 

 

명장면 1986년 4월 11일 IBF 슈퍼미들급 타이틀전 박종팔 vs 비니커토 (미국)

 

박종팔 vs 비니커토 2차전. 1986년4월11일 미국LA에서 IBF슈퍼미들급타이틀전을 치렀다. 1977년 프로복싱 신인왕전 미들급 우승과 함께 스타덤에 오른 박종팔은 동양에서 무적으로 군림했고 국제복싱연맹(IBF)과 세계복싱협회(WBA) 슈퍼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국복서의 무덤’으로 불리는 미국 원정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경기에서 미국의 비니 커토를 15라운드 KO로 꺾고 2차 방어에 성공했다. 1975년 이후 미국 원정 타이틀 매치 9연패 사슬을 끊은 쾌거였다. 이후 미국서 열린 타이틀매치에서 승리한 한국복서는 아직까지 배출돼지 않고 있다.

 

 

 

 

 

명장면 1987년 12월 6일 wba 슈퍼미들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 박종팔 vs 가야드로

 

~ 헤수스 가야르도(멕시코) 2R TKO(0/27) 1987. 12/6 부산 (사직체육관) 박종팔의 핵주먹을 보시라 ~

당시 1라운드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박종팔 선수를 보고 아무도 그가 이길거라고 생각 못했었지만 2라운드에 통렬한 

역전  ko승을 이끌어내며  초대 s미들급 참프로 등극합니다. 마치 이장면은 홍수환의 4전5기를 연상케 하는 명장면.

 

 

 

 

 

1983년 9월 4일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전 도전자 박종팔 vs 챔피언 라경민(2차전)

 

라경민은 박종팔(23)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5년이나 활동한 탓에 프로데뷔는 박종팔보다 3년 늦은 81년에 했습니다. 뒤늦은 프로데뷔후 11전 전 KO승의 호조를 달리며 마침내 OPBF 1위로 도전자 자격을 획득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전문가 예상은 박종팔의 우세였습니다. 나이는 적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박종팔의 경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라경민의 7회 KO승이었습니다. 그것도 4차례 다운을 뺏으면서 말이죠. [1차전 예깁니다]

 

당시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박종팔이 2천500만원, 도전자 라경민은 500만원의 대전료를 받았습니다. 경기는 프로복싱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는데 국내선수간의 대결치고는 열기가 워낙 높아 3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박종팔의 푸트웍은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라운드 중반 라경민이 왼손스트레이트를 뻗을 때 엄지손가락에 오른쪽 눈을 찔려 시야가 흐려지는 등 악전고투했지요. 1라운드 종료 직전 라경민의 왼손훅을 턱에 맞고 다운, 불길한 조짐을 드러냈습니다. 라경민은 2라운드부터 자신감을 얻은 듯 미소를 띄며 묵직한 라이트 스트레이트와 올려치기로 주도권을 잡아 나갔습니다. 박종팔은 4라운드에 오른쪽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왼족 잽에 이은 좌우 훅으로 반격해 처음으로 우세한 라운드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5라운드에서 라경민은 박종팔의 복부를 집중 공격하면서 다시 우세를 잡았고 막판 좌우 스트레이트 소나기펀치로 스탠딩다운을 끌어냈습니다. 일방적인 공세에 들어간 라경민은 7라운드에 왼손 옆구리를 강타해 3번째 다운을 빼앗았고 간신히 일어난 박종팔의 복부를 왼손훅으로 찍어 KO승을 장식했습니다.

 

 

1983년 5월 29일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결정전 박종팔 vs 라경민(7R KO승)

 

28세의 늦깎이에 스타덤에 오른 라경민은 7월 9일 춘천에서 벌어진 논타이틀전에서 동급 6위 수하르노(인도네시아)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아며 5회 KO승을 거둬 13연속 KO 승을 장식하는 등 순항을 계속했습니다. 박종팔과 라경민의 싸움은 기실 그때부터였습니다. 처지가 뒤바뀐 이들은 옵션에 따라 8월 21일 2차전을 갖도록 돼 있었는데 라경민이 대전료에 대한 불만으로 경기 보이코트 의사를 밝혀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여론은 처음엔 옵션계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라경민측이 트집을 부린다는 시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리있는 항변'이라고 두둔하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라경민은 "차라리 권투를 포기하면 했지 도전자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대전료를 받고는 경기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지속했고 대회가 유산 위기에 빠지자 대전료를 똑같이 1천5백만원씩 주기로 극적인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기는 9월 4일 재대결을 하게 됩니다. 소동은 있었지만 팬들의 관심은 그만큼 커졌습니다. 복수의 칼날을 간 박종팔은 경기를 앞두고 "초반 KO로 빚을 갚겠다"고 호언장담했고 라경민은 "전번보다 더 빨리 끝내겠다"고 응수했습니다.

 

마침내 9월 4일 문화체육관. 3라운드까지는 용호상박의 맞대결이었습니다. 1회 공이 울리자마자 두 사람은 숨돌릴 틈없이 육중한 펀치를 맞교환했습니다. 2라운드 들어 박종팔은 양 손 복부 공격과 안면으로 이어지는 연결타를 적중시켜 상대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도권을 잡는가싶던 박종팔은 3라운드에서 라경민의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허용, 잠시 비틀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 라경민이 안면을 커버하는 사이 양 훅으로 복부를 집중 공격, 첫 다운을 뺏는데 성공합니다. 라경민으로선 프로 첫 다운이었지요. 기세가 오른 박종팔은 복부 연결타로 두 번째 다운을
뺏었고 카운트 8에 간신히 일어난 상대를 또다시 복부 집중타로 무너뜨려 공언한대로 화끈한 KO승을 거뒀습니다.

3개월여만에 박종팔은 다시 왕좌에 올라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라경민은 짧은 챔피언의 영광을 뒤로 한채 쓸쓸히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1988년 12월 22일 wba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 박종팔 vs 백인철

 

1988년 12월 22일날 벌어졌던 국내 중량급 최고의 라이벌전인, 박종팔 vs 백인철 선수의 라이트 헤비급 시합 입니다.

당시 박종팔 선수는 거의 은퇴 단계였으며 백인철 선수도 슈퍼 미들급으로 월장을 하려고 준비하였던 시기였죠. 1라운드에는 박종팔 선수가 효과적인 펀치를 적중시키며 우세하게 나갔지만 이후 2R 부터 백인철 선수의 잽과 스트레이트를 무수하게 허용하며 일방적으로 난타당합니다. 결국 9R 레프리 스톱으로 승리는 백인철 선수에게 돌아갔으며 백인철 선수는 이듬해인 1989년 박종팔 선수에게서 타이틀을 뺏아간 베네수엘라의 오벨메이하스를 홈링에 불러들여 통쾌한 KO승을 거두며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이경기를 계기로 사실상 박종팔은 권투계의 역사로 물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