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

대마도여행 3일차 - 이즈하라 가네이시 성터와 수선사

by 레트로상회 2017. 12. 24.






대마도여행 3일차는 이즈하라 시내 투어로 시작된다.  이즈하라는 대마도에서 가장큰 시내이며 하대마도에 속한다.

 첫 방문지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헤옹주의 결혼 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 성터이다.







가네이시 성터는 이즈하라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다.





쓰시마(對馬島) 시(市) 청사를 지나서 좌측으로 돌면 가네이시(金石: 宗가문의 성) 성터가 자리잡고 있다.

아소베이 캠핑장에서 자동차로 약25분 거리에 위치하며 바로옆에 유명한 반쇼인 신사가 있는곳이다





가네이시 성은 임진왜란 때 축성된 시미즈 산성의 기슭에 위치한 평성으로 쓰시마 후추 번주 소 가문의 거성이다.

기네이시노야카타(金石屋形)로 불리는 거관이지만,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근세성곽으로 개축되었다.

석벽과 해자가 조성되었지만, 천수는 세우지 않고, 오테 문에 2층의 망루를 세워 천수 대용으로 삼았다.





현재는 다이쇼 시대 해체된 오테 문이 고사진과 문헌을 토대로 목조로 복원되었고, 1988년 태풍으로 도파된

산바라 성의 오테 문(통칭 고라이 문)이 이축 복원되어 있다. 성터는 일본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성터에 조성된 정원이 국가 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다.




성터 입구 왼쪽에 자리잡은 (이왕조 종가 덕혜옹주 결혼 봉축기념비) 안내판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세운 덕혜옹주의 결혼봉축 기념비이다. 그녀으 삶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덕분에 더 많이 알려졌는데, 조선 제 26대 왕 고종의 막내딸인 덕혜옹주는 1925년 일본에 끌려갔다가 1931년 쓰시마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와의 결혼을 하고, 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한 뒤 1962년 귀국하게 된다.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실어증과 지병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 1989년에 세상을 떠나 경기도 남양주에 묘소가 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베스트셀러 소설로 남아 있으며 이곳에 세워진 봉축기념비는 1931년 다케유키와의 결혼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국 제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 대마도주의 세손인 소 다케유키(宗武志, 1908-1985)' 공(公)과

결혼, 동년 11월 쓰시마(對馬島)를 방문했다. 쓰시마(對馬島)주 소가(宗家) 당주가 조선의 왕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래도(來島)하였으므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비(碑)는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하여, 쓰시마 거주 한국인들이 건립했다.





한편, 시미즈(淸水) 산성에는 쓰시마 도민들이  경축하며 섬겼던 기념비와 철쭉이 지금도 남아 있다. 결혼 생활은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딸 정혜(正惠)를 낳아 서로 신뢰하고 애정이 깊었다. 그러나, 양국의 관계는 갈등이 심하여 두 분은 1955년에 이혼했으며,

다케유키(武志) 공은 1985년에, 덕혜옹주는 1989년에 별세했다. 고 적혀있다.






이 결혼봉축비는 두 사람의 이혼으로 없앴다가 부산-대마도간 선박 취항이 시작되고 한국관광객이 늘어나자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부끄러운 역사는 숨겼다가 한국인을 상대로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고자 다시 만들어 낸 기념비는  또하나의 아픈 역사가 되고있다.











가네이시 성터를 나와서 수선사(수젠지)에 있는 최익현선생 순국기념비로 향한다.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 성터에서 면암 최익현선생 순국기념비가 있는 수선사까지는

차량으약10분정도 걸린다. 수선사로 가는 이즈하라시내 중간에 한국인(부산거주)이 운영하는

오렌지 민숙(민박)집을 방문했다. 숙박이 아닌 동포로서 견학차 들렸다.





오렌지 민숙집의 1층실내 프론트 홀이다. 공간은 전형적인 일본식의 좁은실내이며 시설은 깨끗하고 아담하다




방은 온돌식 난방 구조이다. 두명정도 자면 딱 맞을 규모인데 최대4명까지는 가능한 공간이다







잠시 머물면서 에어컨도 쐬고 시원한 쥬스도 한잔 얻어 마셨다.





오렌지민숙 바로 앞집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라오케 회관이 있다. 이즈하라 시내에는 이렇게 한국인 가게가 많다.

일본인지 부산인지 별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못 느낄만큼 한국인관광 천국이다. 




시원한 한글간판이 일본땅을 무색케 한다







 음~ 임진왜란때 조선침략인 본거지인 대마도를 확실히 한국인들이 먹여 살리네요




이즈하라 시내 약도





잠시 골목을 돌아 수선사 (수젠지 탬플)로 향한다. 수선사는 돌담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수선사(수젠지)는 656년 백제의 비구니 법묘(法妙)가 세운 사찰로 백제의 은행나무와 더불어 대마도가 우리 역사문화 속에 있음을 

사실적으로 암시해준다. 이 절에는 74세의 노령으로 항일 의병활동을 하다 대마도로 끌려가

순국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서 있다.





최익현 선생은 왜놈이 주는 밥은 먹지않겠다며 이곳에서 아사하시고 장례를 치른 후 유해는 부산으로 운구되었다.







“환단고기라든지 삼국사기 심지어 일본서기에서도 대마국과 일본은 별개의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속국이었는데

지키지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조선은 조선의 영토임에도 왜인들을 몰아내지 않았고, 또한 지방관도 파견하지 않았다.

단지 관직으로 주는 것만으로 영토를 소극적으로 관리한 것이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실책이었다.

(수선사 안에서 바라본 입구)








수선사에는 개별 가호의 조상을 기리는 비가 많이 세워져있다. 일명 장례 사찰의 이미지가 강하다.









수선사 본당이다. 본당에는 “修善”이라고 쓴 편액에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친일파 남작 김학진이 쓴 것이니

역사의 매국과 최익현의 애국이 공존하는 가슴아픈 역사가 우리의 발길을 더욱 숙연하게 한다.




지도로 본 수선사는 이즈하라 국제여객터미널에서 12분거리,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 성터에서 15분거리에 있다






대한인 최익현선생 순국지비





최익현 선생의 비석 앞에 준비해 간 술 한잔을 올리고 그의 충정을 숭배하였다.







순국비 옆에는 최익현 선생을 소개하는 비문이 한글로 서각되어 있다.




수선사를 뒤로하며 이즈하라 시내로 발길을 돌린다




어딜가든 한글 광고가 즐비하다. 여긴 이즈하라의 메인 중심가 !




촬영장비 : 펜탁스 k-30 with DA10-17 어안렌즈